메타버스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시대정신인가.
정부와 기업을 중심으로 메타버스 향(向)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검증의 시간도 시작됐다.
실체에서부터 사회 문제까지, 메타버스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의 우려를 팩플팀이 짚어봤다.
① 법 문제
메타버스에 따라붙는 첫번째 질문은 “게임이야? 게임은 아니라고? 그렇다면 뭐냐?”다. 정체에 따라 존립 근거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 게임인가? : 메타버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로블록스·포트나이트처럼 게임이 소셜 플랫폼으로 진화한 경우도 있고, 제페토처럼 소셜 플랫폼이 게임을 끌어 안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적 분류는 다르다. 제페토는 엔터테인먼트 앱, 로블록스는 게임 앱이다. 서비스는 비슷해도 게임이면 사용자 연령 등급분류 대상이 되는 등 각종 규제가 붙는다.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 관계자는 “제페토는 사용자 간 교류에 치중하는 앱이고 로블록스는 게임을 만들고 공유하는 앱이라 분류가 다르다”며 “다만 확정된 기준은 아직 없어 실제 앱들을 검토하고 광범위하게 연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 메타버스 정체성이 주목받는 더 큰 이유는 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코인과 NFT(대체불가능토큰)를 활용해 창작자에게 더 많은 권한과 보상을 주고 거래를 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행법상 게임이면 게임 내 재화를 현금화할 수 없다. 다만 게임위는 로블록스 같은 C2E(Create to Earn) 방식은 허용하고 있다. 게임을 ‘만든’ 대가로 보상 받는 건 괜찮지만, 게임 콘텐츠를 ‘소비해’ 얻은 재화를 환전하면 불법이 된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론 둘의 경계가 애매할 수 있어,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② 사회 문제
게임인지 아닌지 정체성이 분명해지더라도 문제는 더 있다. 현실의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메타버스로 옮겨오기 시작했기 때문.
● 키오스크도 버거운데··· : 메타버스 시대는 디지털 소외 계층을 더욱 고립시킬 우려가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2020년)에 따르면, 4대 정보취약계층(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보다 27.3%p 낮다. 가상세계 비중이 커질수록 디지털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 성범죄 우려도 : 메타는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에 성범죄 방지를 위한 ‘아바타 간 거리두기’ 기능을 최근 도입했다. 한 여성 이용자가 “남성 아바타 3명에 둘러싸여 음성 채팅을 동반한 집단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면서다. 지난해 영국에선 아동성범죄 전력이 있는 20대 남성이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에서 남자 어린이들에게 성적 접근을 시도했다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선 현행법상 현실 세계 아닌, 아바타가 가상세계에서 행한 언어 성희롱이나 유사 성행위, 스토킹, 불법 촬영 등에 처벌이 어렵다.
제페토(위)와 로블록스(아래)에서 행해진 아바타 성추행.
이용자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캡처했다. 고학수 서울대 법전원 교수는 “타인의 아바타가 내 아바타를 불쾌하게 건드리는 것이 성희롱인가에 대한 개념부터가 모호하다”며 “개별 플랫폼과 실제 사례에 대한 디테일한 팩트를 먼저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렇게 멋진 나, 정말 나? : 외모지상주의도 재생산되고 있다. 메타버스 기업들은 아바타를 ‘더 나은 나(Better Me)’로 홍보한다. 제페토·호라이즌 월드 같은 주류 서비스들이 외모·인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아바타 커스텀’ 기능을 열어뒀다지만, 이용자들은 큰 눈과 마른 체형 등 획일화된 미(美)의 기준에 아바타를 맞추는 편. 스탠포드 연구진이 2007년 예견한 프로테우스 효과(아바타 외모에 따라 가상공간에서 개인의 성격도 변화)가 드러나는 중.
③ 기술·윤리 문제
‘메생’(메타버스 인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도 수두룩하다.
● ‘루다’는 인격체일까 : AI는 인격도 정서도 없다는 게 그간의 불문율. 그런데 AI와 사람을 구분하기 힘든 세상에서도 그럴까. 지난해 인간의 AI 학대와 AI의 인간 혐오가 동시에 터진 ‘이루다 사태’는 ‘우리는 AI를 인격체로 대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남겼다. 이현정 중앙대 다빈치학과 교수는 “메타버스 시대엔 AI를 상호 공감을 주고받는 사회의 일원으로 봐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학습된 차별이나 혐오가 결국 사람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니꺼 내꺼, 누가 보장하나 : 지난 6일(현지시간) ‘트위터 창업자의 첫 트윗’이 팔렸던 유명 NFT 거래소 센트(Cent)가 NFT 판매를 중단했다. 페이크 민팅(원작자 몰래 NFT 발행) 등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이유. ‘창작자 권리’를 보장할 제도가 아직 없다. 플랫폼-창작자 간 수익 배분, 음원 등 저작권료 정산 기준, AI가 만든 창작물의 권리 등 남은 문제도 산더미.
● 빅 브라더 그 이상 : 수집되지 않던 정보들이 수집된다. 확장현실(XR)을 구현하는 수많은 실시간 기기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정보를 들여다보는지 일반 이용자들은 알 길이 없다. 이진규 네이버 최고정보보호책임자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기고문에서 “XR 환경에서는 시선 이동이 수집된다”며 “이용자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교류하며, 어떤 것에 골몰하는지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④ 양극화 문제
● 빅테크 독과점 괜찮아? : 미국 경제검찰 격인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나 칸 위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메타버스에 뛰어든 빅테크들이 (작은 기업의) 상품을 모방해 거대 서비스를 독점하지 않을지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5대 빅테크가 시장을 장악해온 지난 20년을 교훈 삼아 (이들이) 경쟁 상대를 제거하고 불법 행위로 독점권을 확대하는 것을 놔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 양극화 괜찮아? : 현실의 ‘본캐’와 메타버스의 ‘부캐’ 간 간극이 클수록, 현실도피성 과몰입이 촉발될 수 있다.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창업자는 지난해 팩플팀과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 시대엔) 돈과 시간이 많아질수록 실제의 경험과 연결을 더 갈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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